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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

질투

ingyu.me 2010. 7. 1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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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처음 질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된것은 2003년의 일이다. 내가 좋아했던 한 친구는 내가 아닌 다른 친구를 좋아하고 있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마음이 향해있을때는 그 어떤 다른 유혹도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음을 알고있기에 나의 마음은 그 친구에 충분히 전해 질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질투'하는 마음과 '질투'라는 단어에서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다. '질투'라는 말을 되뇌이다 문득 떠오른 말이 있었다.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그분께로 향하지 않은 내 마음도 그분의 사랑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게했고 또 그분의 마음을 이토록 아프게하고있다는 것을 알았다. 

 근래 몇번의 인연이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 인간의 사랑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나에게 다가온 인연은 독특한 만남들이었다. 하지만 공통된것은 모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향해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애써 고치려 하지 않았다. 인위적인 관계에 지쳐있었기에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관계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나는 많은 '질투'심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사랑을 하되 나의 행복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의 아픔은 작은 나로서는 견디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랑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따져보았다. 어릴적 난 행복이 최고라고 여겼고 행복을 위해 사랑하려고 했다. 분명 사랑을 통해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행복을 위해 사랑을 한다면 분명 어려움에 낙심하는 상황이 오게될 것이다. 나만의 행복을 위한 사랑, 상대방만의 행복을 위한 사람, 모두의 행복을 위한사랑. 그 어느것도 쉬운것은 없었다. 결국 내 행복의 욕심에 비해 내 사랑이 너무 작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저히 내 사랑으로는 다른 사람의 행복은 커녕 나의 행복 조차 감당할 수 없음을 알았기에 결국 사랑으로 행복해지려는 욕심을 내려 놓게까지 만들었다. 즉, 사랑은 하되 행복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도저히 스스로의 힘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행복의 기준을 동식물과 같은 낮은 수준으로 낮추어 만족하고 싶지는 않았다. 행복하지 않게 살거나 그런삶을 포기하거나 나에겐 두가지 선택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은 기뻐하라고 하신다. 사랑하라고 하신다. 내 스스로는 기뻐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음을 깨달은 나에게 자신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자신의 기쁨으로 기뻐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되는것이 기쁘다고 하신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을 만들었다고 하신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이 세상의 어떤것보다 귀하다고 말년의 솔로몬이 말했다. 욥이 그 많던 재산과 그 어려운 고통을 바꾸어 얻은 것이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된것이 아니었던가. 모든것을 잃어도 그 어떤 아픔이 오더라도 하나님을 더욱 알수있게된다면 조금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은 아직 쉽게 수긍하고 있지 못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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