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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가장 즐겁게 사는법
하나님을 섬긴다면서 하나님이외의것에대한 가치가 바뀌고있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그저 또하나의 내게 유익을주는 우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지못하는것이다. 진정한가치를 깨달을때 그것과 상반되는 가치와 멀어지기 때문이다.
친구에게. 하나님은 사랑 받기 전부터 사랑하시고 당신의 만족을 위해서 우리에게 사랑을 강요하시지도 않지.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로알고 깨달아 신령과 진정으로 사랑하길 기다리고 계시지. 지금도 사랑 받으시기에 합당한 아니, 감당치 못할 정도로 날 사랑해주고 계시면서 말이야.
누구는 세상이 공평하다고 하고 누구는 공평하지 않다고 해요.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라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공평해 보이지 않는게 많은것 같아요. 어쩌면 공평이라는 것은 주위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이 아닌것 같기도 해요. 나는 주위 사람들을 보며 공평의 의미를 찾지만 하나님은 내 안에서 공평을 찾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나는 나와 주위 사람들을 비교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고 계시는것 같아요. 어제의 하나님과의 관계와 오늘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이죠. 누가 크고 누가 작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의 차이를 본다면 그것은 아주 공평한 일이 될것 같아요. 그것은 조건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마음을 보는 일이니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수많은 선택의 기회를 ..
누구나 아는 달란트 비유를 내 삶에 적용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인이 맡기고 간 달란트는 흔히 은사로 설명되는 것은 모두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돌아오는 시간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것 같습니다. 내 삶에 달란트 비유를 적용할 때 주인이 돌아오는 시간을 하루로 압축해 보았습니다. 오늘 아침에 주인이 맡긴 것을 저녁에 찾으러 온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하루가 짧다고 핑계를 댈수만은 없게 되었습니다. 하루동안 해야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루종일 하는 모든 기도를 헤아리는 것은 의미가 없기에 하루의 시작과 하루의 끝에 하는 기도만을 두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나의 달란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매일 아침 하나님께 무언가를 구하는 기도를 하지만 매일 저녁 기도할때 하루의 삶..
세상의 만족과 행복은 그 길이가 매우 짧거나 유한하다.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은 세상은 완전하지 못하며 또한 유한하니 어쩔수 없다. 그럼에도 사람은 짧은 행복을 향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그 짧은 행복을 대신할 또 다른 행복을 찾아 다니며 한 평생을 낭비하고 만다. 짧은 행복들 조차 모으고 모아 연속된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에 반해 하나님은 이미 완전한 행복을 선물해 주셨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늘 강조하시며 말씀하시는 관계이다. 순간과 순간의 관계로 인해 순간은 연속성을 뛸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즉, 일시적인 행복을 지속적인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관계인것이다.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은 그 분과의 관계를 통해 연속으로 그리고 영원으로 이어진다. 유한한 짧은 삶 속에서 영..
"잃어버린 용서의 기술" 우연히 인터넷에서 무료 전자책을 다운 받아보게 되었습니다. 무료배포였기에 당당히 다운 받았지만 무료였기에 손에 잘 잡히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옮긴 분의 이름에 "전병욱" 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와. 우리 목사님 영어도 잘하시나보다 라고 생각까지 했으나... 동명이인 인것 같습니다. 지루하리 만큼 수 많은 예화로 구성되어있는 책입니다. 각 소제목에 걸 맞는 이야기들이 마치 용서는 불가능이 아니라고 역설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용서. 모든 사람의 무거운 숙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책을 보고 난 후 제 생각이 바뀌었을 뿐아니라 마음까지도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용서. 그것을 저자는 핏대를 올리며 실천하라고 그리고 하..
내가 처음 질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된것은 2003년의 일이다. 내가 좋아했던 한 친구는 내가 아닌 다른 친구를 좋아하고 있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마음이 향해있을때는 그 어떤 다른 유혹도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음을 알고있기에 나의 마음은 그 친구에 충분히 전해 질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질투'하는 마음과 '질투'라는 단어에서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다. '질투'라는 말을 되뇌이다 문득 떠오른 말이 있었다.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그분께로 향하지 않은 내 마음도 그분의 사랑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게했고 또 그분의 마음을 이토록 아프게하고있다는 것을 알았다. 근래 몇번의 인연이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 인간의 사랑에 대해 회의적이었던..